
부제: 펫로스로 인한 내 마음의 상처를 인정받지 못할 때 내 마음에 가드를 올리는 법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많이 의지했던 아이를 힘들게 떠나보내고 겨우 마음을 다잡고 우리들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주변의 가족, 지인, 친구, 직장동료 들로부터 예상치못한 심적 아픔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겪게됩니다
어렵게 마음을 털어 놓고 도움을 구할 때 오히려 예상치 못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는 내 아픈 마음을 다시금 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그깟 강아지 한 마리 죽은 것 가지고 왜그래 ? 너무 예민한 것 아니야 ?”
“잡에 가다 보니 펫 샵에 예쁜 애들 많이 갖다놓았더라, 한 마리 사서 키우다보면 잊혀지겠지”
“사람 죽은 것도 아닌데 왜그래 너무 하는거 아니야?”
“겨우 강아지 한 마리 죽은 것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면 어떡해.“
주변 가족이나 친구가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건넨 말이거나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혼잣말일지라도 이 한마디는 아이를 떠나보낸 반려주의 마음에 못이 되어 박히게 됩니다. 그리고 반려인은 슬픔 위에 ‘이해 받지 못함’ 이라는 버거운 짐을 하나 더 얹게 됩니다. ‘나만 너무 심한건가 ?’, ‘이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내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건가 ?’ 하는 자괴감과 고립감입니다.
내 슬픔이 부정당하는 이유: ‘소외된 슬픔’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거나 공감받지 못하는 슬픔을 ‘소외된 슬픔(Disenfranchised Grief)’라고 부릅니다.
소외된 슬픔 (Disenfranchised Grief)은 심리학자 케네스 도카(Kenneth Doka)가 제시한 개념으로,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마음 놓고 슬퍼할 수도 없는 슬픔”을 의미합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인간의 장례식처럼 정형화된 사회적 격식이나 공식적인 휴가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반려동물과의 유대를 ‘가족 간의 사랑’과 동일하게 보지 않고 하나의 장난감처럼 ‘사용하다 버린다’는 개념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사랑했던 아이와 함께 나누었던 사랑스런 느낌, 눈맞춤, 말없이도 통하는 공감, 수많은 추억은 오직 나와 그 아이만이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다른사람이 그 느낌을 알 수도 없고, 깊이를 측량할 수도 없으며, 가치를 매길 수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뿐 내가 느끼는 이 슬픔이 결코 과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변의 ‘이해받지 못하는 시선’으로부터 내 상처받은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
주변의 무지성 발언에 내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간단하게 3가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다른 사람의 이해 구하기를 내려놓기
다른 사람에게 굳이 아픈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애써사 구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 슬픔의 크기는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의 슬픔을 이해해 달라고 매달리는 순간 내 슬픔은 오히려 더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상대방은 내게 상처를 주는 몰인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슬픔을 상대방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자신이 그런 마음을 가져보기전에는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조용히 내려 놓아야 합니다
2. ‘여기까지’라는 선을 긋기
상대방이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게 충고를 던질 때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중 하나는 ‘여기까지’라는 마음으로 선을 긋는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는 조용히 내 마음속으로 ‘여기까지’라는 선을 그으면됩니다
만약 말로 표현해야할 경우에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여기까지’라고 상대방에게 말해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더이산 내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못하게 됩니다
3. ‘놓아주기’할 시간은 내가 정한다
‘이제 잊을때도 됐쟎아 ?’라는 다른 사람의 말로 나만의 애도시간을 정하지 않을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이와 나만의 슬픔을 다른 사람의 말로 중단하거나 억지로 줄이는 것은 좋지않습니다.
억지로 내 마음의 슬픔을 중단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내 마음을 오히려 더 아프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아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느낄 때가 옵니다
그때가 내가 아이를 스스로 ‘놓아주기’를 실행할 때입니다
사람에 따라 슬픔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정답이 없음도 기억해야합니다
주변의 성의 없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처 받을 때, 언제든 카루소의 문을 두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는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으로 극복하도록 돕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품으로 카루소가 보듬겠습니다.
